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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osticism of Evangelion

에반게리온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미지/상징은 바로 종교적인 이미지와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종교적인 이미지는 어떤 면에서는 그노시스주의(Gnosticism)에 가까운 이미지이다.

그노시스주의라는 것은, 고대의 신지학적인 믿음을 일괄하여 일컫는 말이다. 이그노시스주의의 전제는 바로 [인간은 신의 경지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에반게리온에서 가장 큰 모티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상과 유사하게 보이는 [인류보완계획]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단어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처음부터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단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보완계획을 문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인류에게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고쳐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계획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완벽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계획이라고 본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신에 필적하는 존재]를 말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노시스주의에서는 위에 언급했던대로 인간이 신의 경지로 올라갈(완성될)수 있다고 믿는다. 그노시스주의에서의 완성이란 우선 인간의 지를 얻음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완성의 첫번째 단계일 뿐, 절대적인 완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지는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한 기반일 뿐, [인간]이라는 개체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두번째의 완성을 위한 단계가 필요한데,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신의 지, 그노시스인 것이다.

신의 지를 얻음으로써 인간은 신의 경지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노시스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점에서 볼 때, 이러한 사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와도 흡사한 면을 찾을 수 있다. 하여간, 2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이 그노시스주의는 유태교, 플라톤주의, 기독교적 색채가 가미되었으나 그 교리상 인간이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체 기독교에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게 되고,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의미

독일어로 Evangelion이라는 단어는 복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또한 [절대적인 진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즉,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구약성서에 기재된 창세기 이후의 새로운 창세기를 전파하기 위한 복음이며 진리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생각해 본다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제목에는 -[에반게리온]이라는 로보트가 펼치는 신세기-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신세기의 복음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Evangelion이라는 단어는 Eva + Angel + Lion의 세 단어를 합하여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기쁨의 전조(조짐)]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Evangelion인데, 즉 이 에반게리온이라는 이름에는 Eva와 천사(사도)가 합쳐져 기쁨의 조짐인 [복음]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 셈이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 애니메이션 상에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이름(정식 명칭은 [대사도전용범용인형결전병기]-[에반게리온])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EVA라는 이름으로 부르는경우가 많다. 이 EVA가 지칭하는 것은, 바로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아내 이브를 일컫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브는 뱀의 유혹에의해 아담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게 하여 이상향인 에덴을 떠나게 하는 존재라고 하는 점이다. 이것은 또한 에반게리온은 인류에 있어서 부정적인 존재임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적으로 등장하는 거대생명체 [사도]가 [Angel]로 표기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에반게리온 역시 적인 사도와 같은 성질 혹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부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에반게리온은 [대사도전용범용인형결전병기]이면서 스스로가 사도인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세피로트의 나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오프닝 화면을 살펴보면 시선을 끄는 것 중의 하나가바로 [세피로트(Sefiroth)의 나무]라고 불리우는 기하학적인 도형일 것이다. 세피로트는 유대신비교의 카발라(Cabala/cabbala/cabbalah/Kabbalah 등 여러 형태로 표지되는 유대신지학 또는 신비주의 또는 밀교 주법을 행하는 전통을 말함)에서 사용되던 문양을 말하는데, 세피로트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대략 다음의 두가지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나는 히브리어인 [Sappir(청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Sappir란 창조 때 하나님이 뿜어낸 광선의 빛깔을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한가지 설은 [수]를 나타내는 헤브라이어 Safar에서 유래했다는 것으로, 또한 이 용어는 [헤아린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각각의 세피로트마다 숫자가 매겨진 원칙들이 있고 10개의 광선과 22개의 알파벳 문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나 사상 혹은 형태를 나타내는 [세피로트]는 10개였으며, 여기에서 모든 사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카발라에 따르면 근원의 수 1은 열 개의 세피로트로 분할된다. 이 세피로트들은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결합되고 작용하는데, 헤브라이 알파벳의 22자는 각각의 세피라(세피로트는 세피라의 복수형)들 사이의 연결 역할을 한다.

첫번재 세피라 Sefira(역시 [수]를 나타내는 헤브라이어 Safar에서 유래했으며 단수를 나타냄)는 케테르 Kether(왕관)이다. 케테르는 호흐마 Hokma(지혜)와 비나 Binah(지성)로 나뉘어진다. 네번째 세피라는 헤세드 Chesed(사랑) 혹은 게둘라 Gedulla(위대함)를나타내며, 다섯번째 세피라는 게부라 Gebura(정의), 여섯번째 세피라는 티페렛 Tipheret(아름다움), 일곱번째 세피라는 네차하 Nezach(승리)에 해당된다. 그리고 여덟번째 세피라는 호드 Hod(화려함), 아홉번째 세피라는 예소드 Tessod(토대), 열번째는 말후트 Malkuth(왕국 혹은 현실)를 나타낸다. 이 가운데 마지막 열번째 세피라는 이 세상에 시현한 여호와 세히나 Shekhinah와동일시된다. 카발라에서의 세피로트의 나무는 이 외에도 여러가지 형태로 이용되었는데, 이것은 거의 대부분이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부적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즉 세피로트의 배열과 그 연결의 방법은 그노시스주의에서 말하는 [신의 지]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완벽한 세피로트의 나무를 완성하는 것은 바로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신의 지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몇가지 덧붙여 말하자면, 카발라에서는 이 로고스 혹은 원이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 이상 열 개의 세피라의 배열에 따라 최초의 신성한 생성의 세계인 앗실루트 Atsilut가 형성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열개의 세피로트에 의존하는 세 개의 다른 세계가 더 생겨났는데, 그것은 창조와 천체의 세계인 베리아 Beriah와 영이나 천사들과 같이 천상을 활게 있기 하는 피조물들로 이루어진 세계, 엣시라 Yetsirah와 마지막으로 질료(물질)의 세계인 아시야 Asiyah라고 한다. 즉, 세피로트의 나무의 완성은 [신의지]를 얻어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 외에, 새로운 세계의 생성을 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사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에반게리온에 반하여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도]이다. 그러면, 이 사도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도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예수가 복음을 널리 전하려고 특별히 뽑은 열 두 제자 혹은 어떤 고귀한 사업이나 임무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힘쓰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사도에는 Apostle이라는 영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Angel로 번역된다. 다시 천사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본다면, 종교적 신화에서 천국에서 인간세계에 파견되어 신과 인간과의 중간에서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전하는 사자를 뜻한다.

또한 각각의 사도들에게는 사키엘, 샴셀과 같은 천사의 이름들이 붙어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사도는 두번째의 뜻, 즉 신이 부여한 고귀한 사업이나 임무를 수행하는 개체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도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도는 어디에서 왔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의견이 나뉠 수 있다. 실제로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사도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불확실하다.

사키엘이나 샴셀, 라미엘 등과 같이 일관되게 제 3 신토쿄시(엄밀하게 말한다면 네르프본부)를 목표로 행동하는 사도가 있는 반면, 가기엘의 경우는 오로지 에반게리온 2호기만을 노리고 있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사령관인 겐도나 부사령관인 후유츠키의 경우 사도의 목표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TV 시리즈 8화 [아스카,일본에 오다]편에서 새로이 등장한 에반게리온 2호기를 제 6사도 가기엘이 습격하고 이를 간신히 물리치게 된 후, 겐도는 [2호기는 이한가지의 사건(가기엘의 습격)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식의 대사를 하게된다. 즉, 겐도나 후유츠키의 경우 대개의 사도들의 침략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도 네르프의 상위 조직인 제레가 보유한 [숨겨진 사해문서]에 기록된 것이리라 추측할 수 있다. 즉, 제레는 숨겨진 사해문서에 의해 인류보완계획을 추진하며, 사도의 침입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보완계획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담 . 에바 . 릴리스 (Adam, Eva, Lilith)

사도에 대한 모든 의문점이 풀리기 위해서는 위의 설명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면이 있다. 이러한 사도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위해서는 첫번째 사도인 아담(Adam)과 릴리스(Lilith)에 대한 의문이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아담에 대해서는 종교적으로 알려진 부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태초의 인간이 바로 아담이며, 이브(Eve/Eva)의 유혹에 의해 금단의 열매를 먹게되어 낙원인 에덴에서 추방된 후 이브와의 사이에서 카인과아벨을 낳고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 바로 인류이다-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알고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탈무드에 의하면 이브 이전에 아담의 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릴리스]인 것이다. 릴리스는 아담과 함께 흙으로 만들어진 여성으로 아담의 최초의 처였다. 릴리스와 아담 사이에서는 악마인 [릴린]이 수없이 태어났으나, 후에 아담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고는 아담을 버린채 홍해를 날아 건너 사탄의 네번째 처가 되었다. 릴리스는 의외로 유명하여서, 구약성서의 이아야서 34장 14절에도 [밤의 마녀]로 등장하며 문학에서도 괴테의 [파우스트], D.G.로제티의 [릴리스], G.맥도널드의 [릴리스]등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사도였던 타브리스(나기사 카오루)의 말에서 발생한다. 이전까지 첫번째 사도[아담]으로 알고 있었던 롱기누스의 창에 찔려있던 터미널 도그마의 거인이[아담]이 아니라 [릴리스]이며, 인류는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 아니라 아담과 릴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악마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탈무드에 의하면 아담과 릴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악마]인 릴린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같은 릴리스에게서 태어난 사도들은 사실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악마]인 것인가? 또한 인간은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악마]인 것인가? 여기서 이 논리는 자칫 파라독스에 빠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 논리는 바로 [악마]인 인간-릴린이 마지막 [사도]가 되는 셈-이 된다. 결국, 인류보완계획은 인간을 초월하고 또한 사도를 초월한 존재로 인간을 진화시키는 계획이 되는 것이다. 이 초월을 위해 인간과 사도는 예정된 통과의식을 거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통과의식은 바로 [숨겨진 사해문서]에 기재된 순서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며, 이 통과의식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완성된 세피로트의 나무를 만들기 위해 에반게리온이 필요했던 것이다. 에반게리온은 바로 EVA이며, EVA는 곧 Eve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사도와 아담, 릴리스의 연관성인 것이다.

 

인류보완계획,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언급하였던 부분들을 종합하여 조금 더 생각을 진행시켜서 본다면,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하나하나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모든 미스테리들이 바로 이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거대한 미스테리로 집약되어 가고 있는 것을 스토리가 진행되어 가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데, 에반게리온이라는 거대 로봇, 사도, AT 필드, 네르프, 게히른, 제레, 세컨드 임펙트, 아담, 릴리스 등의 미스테리는 전부 [써드 임펙트], 즉 [인류보완계획]을 이루기 위한 거대한 시나리오의 일부로써 존재하는 것이었다. 결국,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보완계획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며, 인류보완계획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에반게리온이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세피로트의 나무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만 이러한 인류보완계획의 의리를 해석할수 있다. 이제 가장 중요한 테마인 인류보완계획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류보완계획이란 불완전한 군체인 인류를 완벽한 개체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그노시스주의라는 개념에서 본다면 완벽한 개체란 신의 지를 얻어 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신의 지는 세피로트의 나무를 완성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노시스주의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신의 창조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신성한 물질의 부분으로 원래의 자신의 진짜 세계를 잊어버린 존재로 인식된다. 신의 지를 얻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육체세계가 환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원래의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세피로트의 나무의 완성은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름을 말할 뿐 아니라, 새로은 우주의 창조까지를 이루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즉, 인류보완계획의 완성은 새로운 창세기를 뜻하며, 이 새로운 창세기(신세기)가 기재된 복음이야말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말하는 것이다. 덧붙여,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신세기(인류보완계획의 완성)을 위해서는 에반게리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피로트의 나무는 10개의 세피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 각각의 세피라들을 이루는 것은 바로 에반게리온이다. 극장판 완결편에서는 9대의 양상형 에반게리온이 등장하는데, 이 9대의양산형 에반게리온과 에반게리온 초호기가 모여 하나의 세피로트의 나무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담과 릴리스의 사이에서 태어난 불완전한 존재였던 인류, 즉 릴린이 세피로트의 나무를 완성한 EVA로부터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10대의 EVA로 만들어진 세피로트의 나무는 인간과 사도를 초월한 존재, 즉 신의 지를 가지고 신의 경지에 도달한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낸다.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우주의 탄생을 의마하는 것이다. 즉, 인류보완계획이란 신과 그 신이 존재할 우주를 함께 만들어내는 계획인 것이다. 창세기가 현재의 우주와 인류의 탕생을 기록한 것이라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새로운 창세기(Neon Genesis)를 그린 것인 셈이다.

 

롱기누스의 창

예수 그리스도를 찔렀다고 전해지는 창. 여기에 찔리게 되면 창으로 상처를 덮지 않으면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한다. 극중에서는 원래 NERV의 지하 Central dogma의 십자가에 박혀 있는 리리스의 가슴에 창이 꽂혀 있었으나 제 15사도가 칩입했을 때 아스카가 대기권 밖의 사도에게 정신오염공격을 당하자 레이의 0호기가 이 창을 사용하여 제 15사도를 소멸시켰다. 그후 창은 달 표면에 꽂혀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 창과 리리스를 이용하여 '인류보완계획' 즉 Third impact를 일으키려고 하였던 SEELE는 계획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蘭뎬 문책을 받는다. 이 창은 극의 마지막에 에바 초호기의 포효에 귀환하여 결국 Third impact를 일으킨다. 아마도 이 창이 Third impact를 일으키는데 핵심적인 물건인 것 같다.

 

A.T. Field

Absolute Terror Field. 사도가 자신의 주위에 펼치는 배리어같은 것. 이로 인해 사도에 대한 통상병기에 의한 공격은 전부 무력화 된다. 에바 역시 A.T. Field를 펼칠수 있으며 또한 A.T. Field를 뚫을수 있는 능력도 있다. 이때문에 사도에 대항할수가 있는것이다. 또한 Death&Rebirth에서는 아스카가 A.T.Field를 펼쳐 전략 자위대를 공격 하기도 하였다. 이 A.T. Field는 에바와 사도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 A.T. Field를 가지고 서로를 구분하고 스스로의 형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사도였던 나기사 카오루 A.T. Field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이라고 하였다.

 

SEELE

Second impact후에 비밀리에 발족된 조직인 인류보완위원회. 의장은 킬 로렌츠로 알려져 있으며, 그외에 미국,프랑스,영국,러시아등 출신의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인류보완계획'을 구상하고 있으며 그들의 '인류보완계획'이란 결국 Third impact를 일으켜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킴으로서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는 군체로 끝나버린 인류를 완전한 그리고 순수한 영혼의 형태로 진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NERV는 바로 이 위원회 직속의 초법규 국제무장집단이다.

 

MAGI

NERV 본부의 메인 컴퓨터. Melchior,Balthasar,Casper 라고 불리우는 3개의 블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작자는 리츠코의 어머니인 아카기 나오코 박사. 그녀는 이 컴퓨터 시스템에 자신의 인격을 이식하였다. 과학자로서의 자신, 어머니로서의 자신, 그리고 여자로서의 자신을 3개의 블럭에 각각 이식하였다. 따라서 마지막에 리츠코가 MAGI system을 파괴하려고 하였을 때, 겐도 사령관을 사랑한 여자로서의 나오코 박사가 이식된 Casper에 의해 명령을 거부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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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민혁 2008.08.05 04:37 신고

    흠..
    우리 얼라한테 링크 걸워줘야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 )

    p.s.
    이메일을 와이 필수로 걸어둬서 글을 날려먹게 만들어요?! ^^

  2. Digital Angel Master 2008.08.05 05:47 신고

    죄송합니다.. 텍스트큐브나 티스토리가 아닌 해외솔루션이라 그렇습니다..
    설치형으로 직접 꾸민것도 아니고, 가입형이라서 제약이 좀 많이 따릅니다..
    제 블로그는 해외유저들도 많이들 보셔서, 스팸덧글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포스트 수도 1000개를 넘었고, 일주일에 보통 200개 정도의 스팸이 차단되었다는 메세지를 봅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주세요 :(
    제겐 많은 권한이 없습니다..
    이번에 IP 하나 받아서 운영해볼까도 생각중이긴 합니다만.., 여의치 않네요..

    anyway, 방문 감사드립니다 :D

출처 : http://www.mediamob.co.kr/magie/blog.aspx?id=198266

저는 안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여러 기독교인들이 저를 안티로 만들어 주시는것 같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가겠지. 그러나 성경이 꼭 진리라고 볼수는 없어." 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어린시절 저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어느 아주머니.
1989년도로 기억합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는 작지만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일요일에 예배가 끝나면 그 교회에서 낮잠자는게 참 좋았었습니다(지금 많은 교회들에서는 참 어려운것 같더군요, 가끔 교회라는곳에 갈일이 있어서 가봤었습니다만 교회가 성경을 공부하는 곳이지, 낮잠자는 곳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어찌보면 맞는 말입니다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만나서 교회에서 결혼식도 올리고 참 행복하게 살던 부부가 있었는데, 두살짜리 아이를 데려와 애가 자주 울어서 예배에 방해가 될까봐 데리고는 왔지만 교회까지 데리고 오기가 미안했나봅니다.
그래서 차안에 두고 예배를 보러 내려왔었던 거죠(지금 생각해도, 부모가 잘못한것은 맞습니다).
여름이고, 그당시에는 차에 에어컨은 흔하지 않았고.. 아이는 질식사로 숨졌습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어느 아주머니, "쯧쯧, 이게 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거여..."
사실 그 아주머니가, "왜 교회에 애를 데려왔어? 시끄럽게" 라고 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믿음을 얻기란 쉽지 않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불편한 교회, 가서 뭐합니까? 보상심리인가요? "일요일 쉬지도 못하고 교회 꼬박꼬박 다니는데 천국 가야지" 라는 마음입니까?
내세가 현재보다 중요하다면 지금 죽어도 좋겠군요? 혹시, 못죽어서 안달입니까?

'교회를 다녀보자' 생각하고, 다른 교회를 갔습니다.
안식일이라며 빵과 포도주를 교회에서 나누어 줬는데 '우리 문화에 맞추어 파전에 막걸리로 해도 괜찮지 않느냐'는 물음에, 3시간동안 설교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문화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 종교입니다.
성경은 왜 번역본을 보나요? 그렇게 따지면 히브리어로 쓰여진 원문을 보는게 맞습니다.

자기가 보고 느낀것을 이야기하는것 뿐인데, 입을 찢어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현대만 마녀사냥도 아니고..
한문장 한문장 따져가며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아니, 자신이) 옳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 한국의 교인들은 "그럴수도 있겠군요"라는 전제를 절대 안 깔고 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조건 "내말이 옳다"입니다. 그것만큼 무식해 보이는것도 없는데.

성경에서 말하는대로, 사람은 미숙한 존재입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요?

아래 퍼온 글은 상당히 오래된 글입니다.  KIDS 라고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생긴 초기 게시판중 하나입니다.  가장 오래된 게시판 중 하나입니다.
글을 쓰신 분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http://www.antiyesu.net/bbs/board.php?bo_table=402&wr_id=231&page=10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7년11월22일(토) 02시57분19초 ROK
제 목(Title): 예수 사상의 핵심은 '사랑'인가

몇몇 분들께서 마가 12:28-34와 누가 10:25-37을 인용하시며 예수의 '이웃 사랑'을 언급하신 글을 읽었습니다. 예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하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고등학교 윤리 시험을 볼 때 '기독교 = 사랑의 종교'라고 쓰면 정답으로 인정받는 것이 상식인 모양이죠.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사랑하라'는 말은 누가 한 것입니까? 마가는 이것이 예수의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는 반대입니다. 율법학자가 영생의 조건이 될 만한 계명을 묻자 예수는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사랑하라'는 말은 율법학자의 대답이지 예수의 말이 아닙니다. 명백히 같은 사건에 기원을 둔 전승이 이처럼 정반대의 형태로 나타나 있는 것은 복음서 문학의 엄밀성 문제에 관한 편집사적 연구에서 취급할 만한 흥미로운 문제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그런 모순-버그?-을 지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요컨대 그것을 예수가 말했든 율법학자가 말했든 대국적인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예수 아닌 다른 사람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점입니다.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가'라고 예수가 그랬으니 율법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대답을 했을 법한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은 이보다 조금 더 미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주해서를 뒤져 보면 예외 없이 이 구절이 신명기 6:5와 레위기 19:18의 인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틀림없이 구약을 뒤져 봅니다. 그리고 나서 '정말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예수 당시의 유대 사정을 조금이라도 공부하신 분이라면 이런 싸구려 주해서를 그냥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애국가 1절 가사정도는 알고 있듯이 당시의 유대인이라면 율법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기도(라기보다는 신앙 고백)로서 알고 있는 '쉐마'라는 기도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쉐마는 '들어라'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로서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의 연속된 송경으로 이루어집니다. 첫머리는 이렇게 생겼지요.

'들어라, 너 이스라엘아. 우리의 하나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율법학자도, 예수도, 또 주위의 구경꾼조차 이 구절을 신명기의 한 구절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쉐마의 한 구절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기도는 지식인만의 것이 아닌 모든 유대인의 필수 교양에 속하는 '쉬운'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문적인 공부를 하신 분들이라면 유대교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 정도는 갖추셨을 테니 제가 이렇게 구구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시겠죠.

목회자이신 Symond님께서야 당연히 아실 테고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황혁기씨나 홍병희씨도 당연히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발언은 예수의 공생애를 전후한 시기의 유대교 문학에서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랍비 아키바는 (홍병희씨가 끔찍이도 싫어하시는 명상 문학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대교 랍비입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죠.) '자기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야말로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포괄적인 기본 계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열 두 족장의 예언'이라는 문서에 속하는 '잇사갈의 유언'에는 '아들들아,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주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절이 있고 '단의 유언'에도 '나는 마음을 다하여 주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여 왔다. 아들들아, 너희도 그와 같이 하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요컨대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예수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 당시 유대교 문화의 '상식'인 것입니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굳이 아니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랑이 기독교만의 고유한 것으로서 크게 거론되어야 할 만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거죠.

여기까지는 또 괜찮다고 칩시다. 예수는 사랑의 전도사였습니까? 안타깝게도 별로 그렇지 못합니다. 예수는 사랑, 사랑 읊어대면서 사랑이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할 만큼 단순 무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의 언동의 본질을 잘 추상하여 포착해 보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 자신은 '사랑' 이라는 단어를 별로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믿어지지 않으신다면 성경 검색용 프로그램이라도 구해서 한 번 뒤져 보십시오. (편리한 세상이죠? staire가 끙끙대며 성경을 뒤지던 시절에 비하면...) '좋아하다', '귀여워하다'라는 정도의 가벼운 의미로 쓴 용례를 제외한다면 예수가 본격적으로 사랑을 언급하는 것은 마태 5:43-44의 유명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과 앞에서 인용한 마가 12장, 누가 10장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더우기 마가와 누가의 '사랑' 이야기는 예수의 말이라기보다는 당시 유대 사회의 누구나 암송하고 있는 쉐마의 구절이라고 본다면 예수의 사랑론은 '원수를 사랑하라' 이외에는 이렇다할 것이 없습니다. (여담이지만 마태 5:43의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말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5:44의 도입구로서는 그럴듯합니다만 구약의 어디에도 이런 말이 나오지 않으므로 호교론적 신학자들이 꽤나 애를 먹는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태의 의도적인 가필이었을까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누가의 그 뒷 부분을 잘 읽어보라는 '문맥론자'가 등장할 때가 된 거죠. 확실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단순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건조한 교설보다는 훨씬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예수는 '이웃의 범위를 전 인류로 확대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든 것일까요?

그렇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사제'와 '레위 사람'에 대한 비판일 뿐입니다. (레위 사람이 어떤 계급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사마리아인은 팔레스타인에서 계속 차별을 받아 온 집단입니다. BC 128년 사마리아가 유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 차별은 구체적인 색채를 띠게 됩니다. 헤롯 왕조가 들어선 뒤 사마리아시(원래는 도시 이름이지만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이름으로 나중에 바뀌었습니다.)는 로마풍으로 개조되어 이름도 로마 황제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세바스테로 바뀌고 사마리아시 한가운데 로마 신전까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같은 헤롯이 만년에 예루살렘 신전 입구에 금독수리상을 장식했을 때에는 폭동에 가까운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성도'가 모욕을 당했으니 소동이 일어난 것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사마리아는 이미 타락한 곳이며 이방화한 곳이니 이같은 취급을 받아도 아무런 말썽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 취급을 받지도 못할 정도로 차별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당연히 이러한 차별에 대한 반발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의식을 뒤집어 놓은 컴플렉스의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보라, 사마리아 사람들조차도 이같이 훌륭한 일을 하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들은...' 이런 사고방식은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차별의 연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누가 17:11-19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이야기 역시 이러한 전도된 차별의식의 수준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문제에 관한 한 예수의 발상은 이런 정도의 선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사마리아인 아닌 자가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마리아인의 일을 생각할 때 품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는 사마리아 지방에서는 활동하지 않았고 예수의 '제자' 또는 지지자인 민중들 속에서도 사마리아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마가 3:8의 기사가 그 증거입니다.

요약하겠습니다. 예수는 '사랑'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했다고 하더라도 유대교 고유의 전통의 궤 안에서일 뿐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사제 계급에 대한 성토는 될 수 있어도 사마리아인에 대한 성심 깊은 애정에서 나온 발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인류 보편의 가치입니다. 결코 기독교만이 사랑을 말할 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에는 저도 이의를 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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